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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식의 엔드게임] ‘우산 천사’가 야구에 던진 희망

"힘내세요. 파이팅!" 지난 10일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 KIA 타이거즈와 LG 트윈스 경기 시구자로 나선 광주 효동초등학교 5학년 전하준 군이 크게 외쳤다. 긴장하는 낯빛이었는데도, 소년은 용감했다. 그라운드로 걸어가 씩씩하게 공을 던졌다. KIA 선수와 팬들은 힘찬 박수를 보냈다.하준 군의 시구를 기획한 김지연 KIA 마케팅팀 프로는 "장내 인터뷰 때 하준 군이 미처 하지 못한 말이 있었다. 커서 '남들을 돕는 직업을 갖고 싶다'고 하더라"고 전했다.하준 군은 '우산 천사'로 유명해졌다. 하준 군은 지난달 29일 비가 내리는 광주 시내를 걷다가 케이크 매장 앞에 주차한 차량 옆을 지났다. 한 어른이 우산 없이 박스를 옮기느라 비를 맞는 모습을 본 하준 군은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어른 뒤를 따라가 까치발을 들어 우산을 씌워주었다.짐을 나르던 어른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둘은 잠시 눈을 맞춘 뒤 서로의 길을 걸었다. 불과 5초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당시 짐을 옮기던 자영업자는 "우산을 씌워준 줄 몰랐다. (영상을 보고) 나중에 다시 만나 감사를 전했다"고 했다. 하준 군은 "비를 맞고 계셔서 우산을 씌워준 것이다.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생면부지의 두 사람이 잠시 스친 이 장면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SNS에는 하준 군에 대한 칭찬이 이어졌고, "덕분에 세상이 아직 따뜻하다는 걸 알았다"는 감상도 올라왔다.폐쇄회로(CC) TV에 찍힌 짧은 영상이 화제가 된 이유가 있다. 우리의 관념과 다른 세상을 봤기 때문이다. 사각지대에서 벌어지는 사고와 범죄를 보여주는 경로에서 예상과 달리 인간의 온기를 목격했다. 어른이 아이의 눈높이를 맞추기도 어려운데, 아이가 까치발을 들어 어른의 키를 맞춘 것이다. 이 영상을 보고 감동한 김지연 프로는 SNS를 통해 '우산 천사'를 찾았다. 그리고 타이거즈 팬이며 야구장을 자주 찾는다는 그의 가족을 초청했다. 하준 군은 "소크라테스 선수를 가장 좋아한다. 내가 볼 때마다 안타를 때리기 때문"이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하준 군이 던진 공은 강속구 투수의 패스트볼보다 강렬했다. 연예인 시구보다 인상적이었다. 심재학 KIA 단장은 "지난해에는 물놀이 중 급류에 휩쓸린 초등학생 형제를 구한 김어진·이세준 군을 시구·시타자로 초청했다. 선한 영향력을 보여준 분들을 마케팅팀이 적극적으로 섭외하고 있다. 프로야구단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전국적으로 유명해지고, KIA 유니폼을 입고 시구하는 건 열한 살 소년에겐 꿈같은 일일 것이다. 하준 군은 그걸 선행에 대한 보상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는 대신 "서로 돕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프로야구는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1982년 출범했다. 이후 42년 동안 선수들을 비롯한 KBO리그 구성원들은 이 취지에 얼마나 부합했는지 의문이다. 도리어 열한 살 어린이 팬이 꿈과 희망을 프로야구에 선물했다.하준 군이 온 힘을 다해 던진 공은 우리 가슴으로, 그렇게 날아들었다. 덕분에 어른들이 힘을 냈다. 스포츠1팀장 2024.04.16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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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식의 엔드게임] 아버지 어깨 위에서, 아버지보다 큰 꿈을 이룬 이정후

아들은 아버지보다 고집이 셌다. 야구 선수가 되겠다는 의지를 좀처럼 꺾지 않았다.아들이 편한 삶을 살기를 바랐던 아버지는 그래도 반대했다. 야구가 아니라 골프 선수가 되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결국 아버지가 졌다. 2007년 광주 서석초등학교 3학년 때 야구부에 들어가는 아들에게 이버지는 딱 한 마디만 했다."왼손으로 쳐라." 이종범(53·전 LG 트윈스 코치)은 왼손잡이다. 밥 먹을 때도 사인을 할 때도 왼손을 쓴다. 단 하나, 야구만 오른손으로 했다. 유격수를 하려면 오른손을 써야 했다.그가 1993년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 KBO리그를 뒤흔들자 “이종범이 왼손으로 쳤다면 한국 야구가 달라졌을 것”이란 말이 나왔다. 타격만 보면 좌타자가 유리하기 때문이다.이종범이 4할 타율에 도전했던 1994년 스즈키 이치로(50·오릭스 블루웨이브)도 일본에서 신기의 타격을 보여줬다. 배트 스피드와 콘택트가 초(超)아시아급이었던 이종범과 이치로는 자주 비교됐다. 그러나 당시 한일 야구 격차가 상당히 컸기에 미국 메이저리그(MLB)는 이치로에게 더 관심을 보였다.이종범과 반대로 이치로는 선천적인 오른손잡이다. 공도 오른손으로 던지지만, 타격만 왼손으로 한다. 우투수의 투구를 보기 유리하고, 타석에서 1루까지의 거리가 가까운 좌타자의 장점을 십분 활용했다.이치로는 2001년 MLB에 진출해 아메리칸리그 신인왕과 최우수선수(MVP)에 올랐다. 미·일 통산 4367안타를 때려낸 뒤 2019년 은퇴했다. 이종범은 1998년 한국인 야수 최초로 일본(주니치 드래건스)에 진출했으나 치명적인 오른 팔꿈치 부상을 입었다. 그때 태어난 아들이 이정후다. 이종범은 일본에서 3년을 뛰고 2001년 KBO리그로 돌아왔다. 빅리그의 꿈은 허공에 흩어졌다. 아버지는 아들이 야구 선수가 되는 걸 원하지 않았다. 재능이 있더라도 프로에서 성공하긴 쉽지 않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아서다. '이종범의 아들'이라는 수식어가 훈장보단 꼬리표가 될 거라 걱정도 했다. 그래도 '꼬마 이정후'의 눈이 너무나 반짝반짝 빛났다. 결국 아버지가 졌다. 대신 아들의 왼손에 방망이를 쥐여줬다. 자신과 다른 방향으로 가란 뜻이었다. 아들은 아버지의 말을 지나칠 만큼 잘 따랐다. 어려서부터 "내 롤모델은 이치로"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이치로처럼 왼손으로 치고 오른손으로 던졌다. 이치로의 등 번호 51번도 달았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재능을 물려줬지만, 코치가 되지는 않았다. 스스로 깨닫고 이겨내기를 기다리고 응원했다. 아버지보다 큰 선수가 되고, 큰 꿈을 꾸라는 무언의 가르침이다.이정후는 이치로의 기능을 치밀하고 영리하게 받아들였다. 2017년 프로에 데뷔해 그가 보여준 강력한 허리 회전과 넓은 콘택트 존은 이치로와 비슷했다. KBO리그 7시즌 동안 타율이 0.340(통산 3000타석 이상 기록한 타자 중 역대 1위)에 이른다.2019년 이종범은 한 방송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들에게 이치로 책을 3권 사줬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안타를 친 타자도 4타수 무안타에 그친 날 집에 와서 4~5시간을 더 훈련한다고 하더라. 아빠는 선수 시절에 술도 먹고 했잖냐. 아빠 말고 이치로를 닮아라."이건 방송용 코멘트다. 이정후는 어려서부터 그렇게 하고 있었다. 아버지보다 키가 한 뼘 더 커버린 이정후는 이미 '이종범의 아들'이 아니었다. 이종범이 '이정후의 아버지'였다. 대학을 졸업한 이종범과 달리 이정후는 서울 휘문고 졸업 후 프로에 직행했다. 방위로 복무했던 아버지와 달리 아들은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하며 병역 특례를 받았다. 1994년 정규시즌 MVP였던 아버지처럼 아들은 2022년 MVP에 올랐다. 아버지가, 아버지 세대가 이룬 반석 위에서 한국 최고의 타자로 성장했다. 그의 나이 불과 25세다.이정후는 13일(한국시간) MLB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6년 총액 1억1300만 달러(1483억원)에 계약했다. 한국 선수 최초로 1억 달러 이상의 빅딜을 끌어냈다. 일본에서 멈춰 선 아버지와 달리 곧바로 태평양을 건넜다.이정후가 2017년 데뷔하자마자 1군 선수로 활약하자 이종범은 “정후는 잡초처럼 자란 게 아니라 좋은 환경에서 곱게 컸다. 힘든 프로 생활을 잘 견딜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내 아들이라는 게 부담이 될까 봐 정후가 어릴 때 야구하는 걸 반대했다”고 떠올렸다.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아들은 아버지가 틀렸다는 걸 증명하고 있다. 생각보다 아들은 더 강했다. 아들의 꿈이 더 컸다. 고집 센 아들은 아버지의 어깨에 올랐다가 세계 최고의 무대로 도약했다.스포츠1팀장 2023.12.1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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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식의 엔드게임] 이대호와 이대은, 그리고 김성근의 '최강야구'

“응. 지금 훈련 끝났어요.”“어때? 그 선수 좋아졌지?”“야구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어.”예능 프로그램 ‘최강야구’에서 최강 몬스터즈를 이끄는 김성근 감독이 요즘 자주 하는 말이다. 낯설면서도 낯익다. 예능 출연자의 코멘트로는 별스럽지만, 그가 수십 년 반복한 것이기에 그리 이상하지도 않다.저런 말은 김성근 감독이 LG 트윈스(2001~2002) SK 와이번스(2007~2011) 한화 이글스(2015~2017) 지휘봉을 잡았을 때 자주 들었다. 일본 롯데 마린스 코치일 때,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 사령탑일 때도 마찬가지였다. 기자가 취재한 시절은 아니지만 1980~90년대에도 그랬다고 한다. 고교팀과 실업팀 시절까지 올라가면 김성근 감독은 반세기 동안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최강야구’에서도 여전하다. 은퇴 선수들로 팀을 구성한 예능인데도 다큐처럼, 전쟁처럼 하고 있다. ‘최강야구’가 실전성을 강조한 프로라고 해도 그는 진짜 프로팀을 이끄는 것처럼 승부에 몰두한다. 훈련 프로그램을 짜고, 성과를 체크한다. 최적의 전략과 조합을 찾는다. 어떤 선수가 자발적으로 훈련했다는 말에 흐뭇하게 웃는다.이 과정에서 예상 밖의 일도 일어나기도 한다. 김성근 감독은 훈련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이대호(전 롯데 자이언츠)를 첫 경기(KT 위즈 2군)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했다. 지난해 KBO리그 지명타자 골든글러브 수상자를 과감하게 빼면서까지 리더의 지향점을 구성원들에게 똑똑히 전했다. 이대호는 “대타부터 차근차근 올라가겠다”고 하더니 지난 8일 방송된 경기(휘문고)에서 4번 타자로 나섰다.김성근 감독은 지독하게 이기고 싶어 한다. 그것도 자신의 방식을 고집한다. 예능이 재미있으면 됐지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 목표 승률 이하로 떨어지면 프로그램이 폐지된다는 장치가 있긴 하지만, 그는 연출 의도보다 더 절박하게 고민하고, 싸우고 있다. “돈 받으면 (은퇴 선수라도) 프로다”, “팀 구성원과 그들의 가족까지 수백 명의 생계가 달린 일”이라며 미간에 힘을 준다.‘최강야구’가 화제를 모으는 건 은퇴 선수들이 보여주는 열정 덕분이다. 프로그램 자체가 관찰 예능의 성격을 띠며 승부의 이면을 잘 묘사한다. 여기에 독한 김성근 감독의 리더십이 더해지면서 극적인 스토리가 만들어지고 있다.모든 시선이 부드러운 건 아니다. 은퇴했다고 해도 최고 레벨에 있던 선수들이 프로 2군이나 고교팀을 상대하는 건 어린아이 손목 비틀기로 보는 사람도 있다. 프로에서 더 많은 돈을 받고도 슬렁슬렁 뛰었던 선수들이 예능에서 이를 앙다물고 뛴다며 탐탁지 않게 보는 이도 있다.논란이 있어도 많은 이들은 ‘최강야구’를 본다. 그 이유는 진짜 야구 중계가 담지 못하는 팬들의 갈증을 풀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중계에서 볼 수 없는 연출적인 요소가 이 프로그램에 있다. 게다가 김성근 감독이 증폭하는 승리를 향한 간절함이 잘 묘사돼 있다.지난 3월 한국 야구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단순히 일격을 당한 게 아니었다. 2013, 2017년 WBC와 2020 도쿄올림픽으로 이어지는 참패의 연장이었다. 한국 야구가 경쟁력을 잃은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일부 선수의 몸값은 치솟지만, 그에 걸맞은 실력을 갖추지 못했다. 팀플레이는 퇴보했다. 이를 바꿀 리더십은 등장하지 않았다. 여러 감독의 색깔과 구단의 운영 방식은 대동소이했다.최근 KBO리그에는 보신주의와 몰개성이 만연해 있다. 야구가 큰 인기를 누리는 건 변함없지만, 팬들에게는 어떤 결핍이 있었다. 그러다 김성근 감독에게 다시 눈길이 가는 것이다.6년 전 김성근 감독이 한화 지휘봉을 내려놓을 때 그의 지도자 인생은 끝난 줄 알았다. 승리지상주의와 권위적 모습, 혹사 논란으로 상징되는 그의 리더십이 한계에 부딪힌 거로 보였다. 그러나 이후에도 일본 소프트뱅크 호크스가 그를 코치로 영입했다. 팔순 나이에는 ‘최강야구’를 이끌고 있다.지난 8일 방송에서 이대은(전 KT)은 변화구 3개로 삼진을 잡는 모습을 보여줬다. 시속 145㎞의 패스트볼을 예리하게 꽂기도 했다. “이대은은 155㎞를 던질 수 있다”는 김성근 감독의 허풍 같았던 말이 절반쯤은 실현됐다.김성근 감독은 개인의 단련과 조직의 단결을 프로야구가 아닌 새 플랫폼에서 웅변하고 있다. 새로운 발명이 아니다. 낡은 것으로 여겨졌던 가치의 발견이다. 남들이 유행을 좇을 때 그는 50년째 자신의 자리에서 단단하게 뿌리내리고 있다. 돌고 도는 세상은 김성근을 또 찾는다. 2023년에도 그의 야구를 기대하는 이들이 또 생겼다. 고집스런 리더가 가진 특권이다.스포츠1팀장 2023.05.1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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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식의 엔드게임] "야구로 미국 이기겠다" 일본의 90년 꿈 이루나

일본 요미우리신문의 사주였던 쇼리키 마쓰다로(正力松太郎, 1885~1969)가 생전에 남긴 3훈(訓) 중 하나가 ‘미국을 따라잡고 추월하라’였다. 메이지 시대 이후 일본의 기치는 ‘서양 따라잡기’였다.일본 야구 발전을 위해 마쓰다로는 메이저리그(MLB) 올스타의 방일을 추진했다. 1931년 첫 대회가 열렸고, 1934년 2차 방일에는 베이브 루스도 참가했다. 첫 대회에서 0승 17패, 2회 대회 때 1승 17패를 당한 일본은 더 간절하게 미국을 이기고 싶어 했다. MLB 올스타와 대결했던 대일본야구구락부(클럽)는 2년 뒤 도쿄 교진군(현 요미우리 자이언츠)이 되었다. 이를 시작으로 일본프로야구(NPB)가 태동했다.일본은 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맞고 패망한 뒤 크게 침체했다. 원폭 공격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시민을 위해 1945년 시민구단 히로시마도요 카프가 창단했다.이후 일본은 조금씩, 조용히 사회‧경제적 힘을 키웠다. 1960년대 ‘아시아의 홈런왕’ 오 사다하루와 ‘미스터 베이스볼’ 나가시마 시게오가 이끄는 ‘ON 타선’은 요미우리, 아니 일본의 자부심이었다. 가장 미국적인 스포츠라는 야구가 일본의 국기(國技)가 된 배경이다.일본은 특유의 장인정신을 야구에 녹였다. 집요할 만큼의 정확하고, 세밀했다. 상대를 철저하게 분석하고, 약점을 파고드는 일본 야구는 한국보다 늘 앞섰다. 1990년대 후반 노모 히데오, 2000년 초반 스즈키 이치로가 MLB에 진출하면서 일본은 더 큰 자신감을 얻었다. 이후 일본 톱클래스 선수들은 미국에서도 통한다는 신뢰가 생겼다. 급기야 2006년 초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과 2009년 WBC에서 일본이 우승하자 그들은 세계 제일이 되었다고 선언했다. 여기까지는 일본 내에서 퍼진 메아리였다. 2013년과 2017년 WBC에서 일본은 4강까지만 갔다.제5회 WBC에서 일본은 당시와 또 다르다. 이치로와 마쓰자케 다이스케 등 기교파 선수들이 주축이었던 과거와 달리 2023년 ‘사무라이 재팬’은 압도적인 힘을 과시했다. 2006년, 2009년과 달리 한국과 접전을 벌이지도 않았고 4전 전승으로 8강에 올랐다. 이 과정에서 보여준 오타니 쇼헤이, 사사키 로키 등의 파워는 경이적이었다. 이미 MLB에서 100년 묵은 루스의 투‧타 여러 기록을 깨버린 오타니는 2021년 투수로서 9승, 타자로서 46홈런을 기록하며 아메리칸리그(MVP)에 올랐다. 지난해에는 홈런이 34개로 줄었지만, 투수로서 15승 평균자책점 2.33을 기록했다. MLB에서도 최고 스타가 된 오타니도 최고의 컨디션으로 WBC에 참가하고 있다.22세 사사키 로키는 이미 세계에서 가장 빠른 패스트볼(시속 164㎞)을 던지는 투수로 성장했다. 지난 11일 체코전 피칭을 보면 당장 미국에서도 통할 수 있어 보였다.힘센 거인만 있는 게 아니다. 야마모토 요시노부는 일본 특유의 정확하고 현란한 피칭을 뽐냈다. 일본 최고의 외야수 요시다 마사타카는 작은 체격(1m73㎝)인데도 지난겨울 보스턴 레드삭스와 5년 9000만 달러(1200억원)에 계약했다. 정교함을 바탕으로 한 파워의 향상이 2023년 일본 대표팀을 진짜 ‘세계 제일’의 반열에 올려놓았다.마쓰다로의 유훈을 품은 요미우리의 홈구장 도쿄돔은 ‘일본 야구의 심장’이라 불린다. 거기서 치른 WBC 1라운드 4경기에서 일본 대표팀은 강력한 파워를 보여줬다. 지난 10일 일본에 4-13으로 대패한 한국에는 치욕의 무대이기도 하다. 일본 주니치 드래건스 스타이자 MLB에서도 활약한 후쿠도메 고스케(TBS 해설위원)는 12일 기자를 만나 “최근 일본 선수들의 힘과 체격이 향상됐다. 탄탄한 기본기 위에서 웨이트트레이닝과 식단 관리를 통해 파워를 만들었다. 이제 일본은 미국의 경쟁 상대가 된 것 같다. (일본) 후배들이 정말 잘하는 것 같다”고 자랑스러워했다.일본 고시엔 대회에 참가하는 고교 야구팀만 해도 3600여 개에 이른다. 한 세기 전 “미국을 따라잡겠다”는 마쓰다로의 꿈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린 일본 선수들은 지금도 성장하고 있다. “일본 야구가 미국에서도 통한다”는 평가에 만족하지 않고 ‘힘으로 미국과 맞서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한국 대표팀에서 가장 뛰어난 타격을 보여준 이정후도 “(일본전에서) 태어나서 처음 보는 공을 쳤다. 확실히 KBO리그에서는 보지 못했던 공이었다”고 토로했다. 일본 야구가 미국 야구를 추격하는 사이 한국 야구는 그만큼 뒤처졌다. 아니, 한참 뒷걸음질했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스포츠1팀장 2023.03.14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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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식의 엔드게임] 미국 따라가다 태평양에서 길 잃은 한국 야구

지난 10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 한일전을 중계한 사사키 가즈히로 일본 TBS 해설위원은 “한국 대표팀이 예전과 달라졌다. 과거 한국 타선은 상당한 압박감을 줬다”고 말했다. 일본야구에서 ‘대마신(大魔神)’으로 불리며 선동열과 구원왕 경쟁을 펼쳤던 그는 2000년 메이저리그(MLB)로 가서 4년간 129세이브를 따낸 전설적인 투수였다.사사키에게 2008년 베이징 올림픽(금메달), 2009년 WBC(준우승)에 나선 한국 대표팀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이종욱‧이용규‧정근우 등 끈질기고 투혼 넘치는 테이블세터와 이승엽‧이대호‧김태균 등 파워와 테크닉을 겸비한 중심타선이 조화를 이뤘다. 하위타선에는 수비와 주루가 뛰어난 선수들이 배치됐다.사사키가 본 2023년 한국 라인업은 과거와 달랐다. 토니 에드먼, 김하성 등 MLB 선수들이 1, 2번을 맡았다. 박병호‧김현수 등 과거 빅리그에서 뛴 이들이 중심타선을 구성했다. 타선의 무게감은 과거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다.그러나 한국 타선은 중심타자가 9명인 것 같았다. 어려울 때 활로를 뚫고, 까다로운 상대에게 일격을 가하는 모습을 보기 어려웠다. 모두가 어깨에 힘이 들어간 채 크게 스윙했다. 그들의 힘과 기술은 일본 투수들을 당해내지 못했다.마운드에서 느껴진 차이도 비슷했다. 일본전 구원 투수로 나선 곽빈‧정철원‧김원중‧이의리‧정우영 등은 시속 150㎞ 안팎의 빠른 공을 던졌다. 그러나 제구가 엉망이었다. 스트라이크존을 크게 벗어나는 볼을 던지다가, 억지로 밀어 넣은 공은 난타당했다. 한국은 10여 년 전부터 MLB를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했다. 세이버매트릭스(야구를 통계‧수학적 방법으로 분석)를 야구의 절대 진리로 받아들였다. 빅리그의 파워와 스피드를 동경하면서 근육을 키우기에 열중했다. 라이벌 일본은 힘으로 이길 수 있다고 믿었다. 과거 KBO리그 각 팀에 몇 명씩 있었던 일본인 코치는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다. 그렇게 한국 야구는 태평양을 가로질렀다.그 사이 경고음이 여러 번 울렸다. KBO리그의 질적 저하, 특히 기술적 퇴보가 지적됐다. 국제경쟁력은 꾸준히 떨어지고 있었으나, ‘야구 월드컵’이라는 WBC는 2017년 4회 대회 이후 5년 동안 열리지 않았다. 2021년 열린 도쿄 올림픽(4위)에서 한국 야구의 현주소를 확인했다.다시 만난 ‘사무라이 재팬’은 거인이 되어 있었다. 오타니 쇼헤이(1m93㎝)와 다르빗슈 유(196㎝) 등 빅리거는 말할 것도 없고, 일본 리그의 젊은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최고 시속 164㎞를 던지는 사사키 로키(1m90㎝)와 지난해 56홈런을 폭발한 무라카미 무네타카(1m88㎝) 등을 보면 힘의 격차가 더 크게 느껴졌다. 2009년 WBC에서 일본은 봉중근‧이대호‧김태균의 덩치를 보고 경외감을 느꼈다. 스즈키 이치로, 마쓰자카 다이스케 등 세계 최고의 테크니션이 주축이었던 일본과 한국은 결이 다른 팀이었다. 당시 일본은 한국과 3승 2패로 치열한 접전을 벌인 끝에 우승했다.현재 일본 야구도 그때와 달라졌다. 일본 관계자는 “2000년 전후로 일본의 각 팀 에이스는 신기에 가까운 제구를 자랑했다. 시속 145㎞ 안팎의 공으로 보더라인을 농락했다”며 “이후 일본도 MLB 훈련‧육성법을 도입하면서 힘이 붙었다. 공 한두 개(7~15㎝) 정도 존 안으로 들어오더라도 파워로 타자를 이겨내고 있다. 탄탄한 기본기 위에 파워를 키웠으니 안정적”이라고 설명했다.한‧일 야구의 격차는 바로 여기서 더 벌어졌다. 투수의 컨트롤, 타자의 콘택트가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은 KBO리그 내에서 파워 경쟁만 한 결과다. 류현진이 MLB에서 톱클래스가 된 건 정교한 제구 덕분이었다. 우리는 그걸 간과했다. 힘만 키우려 했다. KBO리그는 MLB와 비슷한 기술과 특성을 가진 ‘하위 버전’이 된 것이다. “한국 야구가 달라졌다”는 사사키의 말은 이런 뜻으로 이해된다.한국 타자들 중 가장 좋은 타구를 날린 이정후도 “야구 인생이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계속 생각날 것 같다. 분한 것도 있다”면서도 “(그래도) 태어나서 처음보는 공들을 쳐서 좋았다. 확실히 일본 투수들의 공이 좋았다. 리그에서는 보지 못하던 공”이라고 말했다.한국은 일본전에 투수 10명을 쏟아붓고도 4-13으로 완패했다. 세계적으로도 잘 알려진 라이벌전의 결과는 외신 기자들에게도 놀라웠던 모양이다. MLB닷컴 기자는 12일 기자회견에서 이강철 한국 대표팀 감독에게 “젊은 불펜 투수들에게 일본전 이후 전달한 메시지가 있느냐”고 물었다. 이 감독은 “이 선수들이 성장해서 앞으로 한국 야구를 이끌어가야 한다. 자신을 되돌아보고 미래를 그릴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한국 야구는 안일했다. 베이징과 WBC 특수에 취해, 도전하고 연구하는 걸 소홀히 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와 10개 구단도 MLB를 따라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겨울에는 수십억 원의 대형 계약이 심심치 않게 터졌다. 그러는 동안 하체(기본기)가 부실한데 상체(근육)만 커진, 언밸런스한 야구가 KBO리그에 자리 잡았다.한국 야구의 ‘참사’는 도쿄에서 처음 일어난 게 아니다. 2003 아시아야구선수권, 2006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의 프로 정예팀은 완패했다. 그때마다 위기를 기회 삼아 다시 일어났다. 한국 야구는 예전처럼 빠르게 반등할 수 있을까. 그건 자신할 수 없다. 그때보다 기본기가 더 부실하기 때문이다. 일본과 해볼만 하다며 자만한 채 미국으로 향했던 한국 야구가 갈 길은 어디일까. 리그 구성원 모두가 고민해야 할 문제다. 태평양에서 길을 잃으면 정박할 곳도 없다.도쿄(일본)=스포츠1팀장 2023.03.13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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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식의 엔드게임] 이강철은 왜 카이사르를 소환했나

이강철 감독이 이끄는 야구대표팀이 5일 일본 오사카에 있는 마이시마 버팔로스 스타디움에서 가볍게 훈련했다. 일본에의 첫 공식 일정이었다. 대표팀은 여기서 두 차례 평가전을 벌인 뒤 도쿄로 이동,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를 치른다. 오는 9일 호주전이 첫 경기다. 미국 애리조나 투손에서 진행된 대표팀 캠프 분위기는 밝고 부드러웠다. 이강철 감독은 소속팀 KT 위즈에서 그랬던 것처럼 선수들과 친근하게 소통했다. 그러나 결전지에 도착한 뒤로는 공기가 조금 달라졌다. 어느새 전쟁을 앞둔 장수 같아졌다.이강철 감독의 의지는 한국야구위원회(KBO) 보도자료에 담긴 출사표에서 충분히 읽을 수 있다. “그라운드의 전사가 되겠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 감독은 고대 로마 시대의 대정치가이자 장수인 율리우스 카이사르(기원전 100~44)의 명연설을 인용했다.카이사르의 저서인 『갈리아 전기』에 따르면, 그는 거대하고 야만적인 게르만족을 두려워하는 자신의 병사들에게 이렇게 역설했다. “게르만은 우리 선조가 쳐부순 바로 그 민족이다. 우리에게는 게르만족을 전멸시킬 수 있는 뛰어난 전략이 있다.”맞서 본 적 없는 거인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자는 독려였다. 우리는 이미 그들을 이긴 적이 있다는 역설이었다. 2006 WBC 4강,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2009 WBC 준우승을 이뤄낸 선배들처럼 2023년 대표팀도 국민에게 명승부를 선물할 수 있다고 응원한 거다. 이강철 감독은 “우리 유니폼에는 ‘승리의 경험’이 새겨져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대표팀에는 김광현‧양현종‧김현수 등을 제외하면 한국 야구의 황금기를 경험한 선수가 거의 없다. 처음 대표팀에 뽑힌 이들도 적지 않다. 대표팀은 오는 10일 메이저리그(MLB) 스타들이 즐비한 일본을 상대한다. 젊은 한국 선수들에게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 다르빗슈 유(샌디에이고 파드리스) 같은 투수는 게르만족 같은 공포일 것이다. 2라운드에 진출한다면 만날 것으로 보이는 쿠바‧네덜란드의 전력도 한국보다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이강철 감독이 출국에 앞서 출사표를 낸 이유는, 갈리아 전쟁을 앞둔 카이사르의 심정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상대를 만나기 전에 공포에 먼저 지는 걸 막고 싶은 것이다. 2013년과 2017년 WBC에서 한국은 1라운드 통과에도 실패했다. 이 감독은 가까운 패배의 기록을 묻어버리고, 찬란한 승리의 기억을 소환했다.큰 대회를 앞두고, 특히 전력상 언더독일 경우에는 리더의 한마디가 흐름을 바꿔놓는 경우가 많다. 2006년과 2009년 WBC를 이끌었던 김인식 감독이 짧은 말로 긴 여운을 만들 줄 알았다.김인식 감독은 2009년 대표팀 감독을 맡고 “나라가 있어야 야구도 있다”고 일갈했다. 당시 대표팀 코치진과 선수 구성이 어려웠던 상황을 통타한 거다. 당시 프로팀 감독들은 대표팀 코치로 오길 꺼렸고, 해외에서 뛰는 선수들도 저마다의 이유로 불참했다. 흩어진 이기심을 하나로 모으는 데 김인식 감독의 말처럼 강렬한 수사법은 없었다.2009년 WBC 대표팀은 예상을 깨고 또다시 3라운드(4강)에 진출했다. 이때 김인식 감독이 “위대한 도전을 해보겠다”고 말했다. 결승 진출 또는 우승을 목표로 내건 것보다 더 커 보였다. 대표팀은 결승전 연장 승부 끝에 일본에 패했으나, 그 여정은 충분히 위대했다.2009년 이후 대표팀은 수성에 실패했다. 가장 최근에는 도쿄 올림픽 노메달(4위)로 국민에게 큰 실망을 안겼다. 이제 지켜낼 성이 없다. 다시 도전하는 입장이다.이강철 감독은 최근 기자와 만나 이런 말을 했다. “한국 야구가 자꾸 위기라고 하는데, 난 동의하지 않습니다. 우리 선수들이 정말 노력하고 있어요. 잘할 겁니다.”지난 10여 년 동안 프로팀 감독은 대표팀을 맡기 꺼렸다. 전력은 예전만큼 좋지 않은데 책임과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반면 이강철 감독은 손익 계산하지 않고 “정말 영광”이라며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그리고 선수들과 자기 자신을 다잡기 위해 격문에 가까운 출사표를 냈다. 이강철 감독의 기대대로 2023년 WBC는 한국 야구의 새 기회일 수 있다. 잘못하면 더 큰 위기일 수도 있다. 이제 카이사르의 또 다른 명언처럼 “주사위는 던져졌다”.오사카=김식 기자 2023.03.06 07:00
프로야구

[김식의 엔드게임] 용진이형은 왜 고객과 싸우는가

한국인 중 이마트와 스타벅스에 가는 사람은 몇 명일까. 범위를 넓혀 신세계백화점과 SSG닷컴을 이용하는 고객은 얼마나 될까. 국내 경제활동인구 2900만 명 중 대부분이 신세계그룹 고객일 것이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SSG 랜더스 구단주가 된 건 유통‧소비재 기업 오너로서 합당한 경영 선택이었다. 한국시리즈(KS) 우승을 네 차례(2007, 2008, 2010, 2018년)나 해낸 SK 와이번스를 인수한 SSG 야구단은 2년 만인 올해 정규시즌과 KS 통합 챔피언에 올랐다. 2022년 선수 총연봉(상위 40위 기준, 외국인‧신인 제외)으로 248억원을 쓴 ‘값진 우승’이었다. 11월 8일 SSG의 우승이 확정되자 정용진 구단주는 마이크를 잡고 관중석을 향해 “여러분 덕분에 이 자리에 섰다. 우리는 2022년 홈(인천) 관중 1위다. 모든 영광을 팬들께 돌리겠다”며 감사를 전했다. 그는 우승 세리머니를 하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신세계그룹 19개 계열사는 역대급 할인 행사(쓱세일)를 진행하며 야구단 우승을 자축했다. 연말 각종 시상식에서도 SSG는 주인공이었다. 우승 여운이 가시지 않은 지난 15~17일 SSG 일부 팬들은 구단 운영에 반대하는 트럭시위를 벌였다. 우승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은, 다른 팀보다 2~4배 연봉을 지급하는 구단을 비난하는 건 전례가 없다. 시위에 나선 팬들은 ‘베테랑 단장(류선규) 내쫓고 비선실세 바지단장 앉히는 정용진 구단주’를 비판하고 있다. SSG가 지난 14일 김성용 퓨처스(2군) R&D 센터장을 신임 단장으로 선임했다고 발표한 게 도화선이었다. 24년 동안 고교야구 감독을 하다가 구단에 들어온 지 1년 만에 단장으로 승격된 걸 팬들은 납득하지 못한 것이다. 의혹의 핵심은 정용진 구단주와 친분이 있는 중소기업 대표 A가 영향력을 행사해 김성용 단장을 임명했다는 것이다. 공식 직책이 없는 A가 한국야구위원회(KBO)로부터 AD카드를 받고 야구장을 곳곳을 다니며 선수들과 친분을 쌓은 건 사실이다. 이에 올여름부터 ‘김성용 단장설’이 돌았는데 그게 현실화하자 A가 ‘비선실세’라는 것이다. 논란이 커지자 민경삼 SSG 랜더스 대표는 14일 입장문을 냈다. 민 대표는 입장문에서 “류선규 단장은 팀 재건의 목표를 이뤄 소임을 다했다는 완강한 뜻(사의)을 밝혔다”면서 “구단은 짧은 시간에 인수 및 창단을 했다. 이에 야구계 많은 분들에게 자문을 받고 운영에 반영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류선규 전 단장의 최근 행보를 보면 사퇴 의사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또 SSG 운영진에는 와이번스의 네 차례 우승에 공헌한 직원들이 대부분 남아있다. 시스템을 충분히 갖춘 팀이 내놓은 해명으로는 군색하다. 여기까지는 프로구단이 겪을 수 있는 진통이다. 정용진 구단주가 이 논란에 뛰어들면서 문제가 커졌다. 그는 15일 자신의 SNS에 “여기는 개인적인 공간임. 소통이라고 착각하지 말기를 바람. 마음에 들지 않거나 불편한 포스팅이 있으면 댓글로 알려주길 바람. 영원히 안 보이게 해드리겠음”이라고 썼다. 팬들이 SNS에 비선실세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자 감정적으로 대응한 것이다. 팬들의 불만이 더 커지자 정용진 구단주는 SNS에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것은 소통이 아님. 주장하는 사람이 증명해야 하는 것”이라고 썼다. 이는 비선실세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그 실체를 증명해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야구단은 사기업이기 때문에 경영진이 인사권을 행사한다. 임원의 교체는 2년 전 SSG가 구단을 인수할 때부터 어느 정도 예견됐다. 따라서 정치권에서 쓰는 비선실세라는 용어를 SSG 사태에 갖다 붙이는 건 부적절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경영 투명성에 관한 문제라면 얘기가 다르다. A씨는 한 인터넷 방송을 통해 항간에 떠도는 소문을 대부분 인정(인사개입은 인정하지 않았다)했다. 게다가 A는 SSG 공식 행사의 내빈으로 여러 번 등장했다. 전혀 비밀스럽지 않았다. 정 구단주 말대로라면 “A는 비선실세가 아니다”라는 '증명의 책임'이 SSG에도 있다. 논란의 본질은 정용진 구단주가 고객과 대립한다는 점이다. SNS를 통해 팬들과 스스럼없이 교감해온 그가 ‘소통이라고 착각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불가능한 걸 요구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편을 갈랐다. 정용진 구단주는 1년 전 SNS에 멸공(공산주의를 멸함)이라는 화두를 여러 차례 던졌다. 이 논란은 대선을 앞둔 정치권으로 확대됐다. 그의 정치적 입장을 지지하는 이들도 있었고, 반대 진영에서는 신세계 제품 불매운동을 벌였다. 이번에는 비선실세 사태에 편을 가르고 싸운다. SNS에서 어떤 말을 하든 그건 표현의 자유다. 정용진 구단주의 경우는 그 무게가 다르다. 자기자신을 통한 ‘스타마케팅’으로 신세계그룹의 이미지를 만드는 전략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이 사태의 파장은 작지 않다. 기업인이 정치적 발언을 삼가고, 대외 메시지를 치밀하게 관리하는 이유는 더 많은 고객을 끌어안기 위해서다. 자신이 지지하는 세력뿐 아니라 중도층과 반대진영의 지갑을 열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기업가치 제고와 주주 이익의 극대화에는 좌우가 없다. 지난주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미국 전기자동차 업체 테슬라의 목표 주가를 하향 조정하면서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의 트위터 인수에 따른 리스크를 거론했다. 골드만삭스는 테슬라 브랜드가 더욱 양극화(more polarizing)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비싼 전기차 생산업체인 테슬라에도 당파적 이미지는 악영향을 끼친다. 하물며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필수소비재를 파는 신세계그룹으로서는 고객과 갈등하는 모습이 더 치명적이다. 머스크 리스크를 보며 재계에서 ‘용진이형 리스크’를 걱정하는 이유다. 야구단 우승과 정용진 구단주 행보에 열광했던 팬들(고객)이 한파를 뚫고 거리로 나왔다. ‘용진이형’이라 불렀던 구단주가 “소통이라 착각하지 말라”고 했을 때 그들이 받았을 충격은 어느 정도였을까. SSG 사태를 보면 구단주가 자신들과 소통한다고 믿은 게 정말 착각이었던 것 같다. 스포츠1팀장 2022.12.19 07:40
야구

[김식의 엔드게임] 밀실이 만든 리더는 밀실에 갇힌다

프로야구를 관장하는 한국야구위원회(KBO)의 수장 정지택(71) 총재가 갑작스럽게 사임했다. KBO 관계자는 "정 총재가 지난해 말부터 스스로 물러날 뜻을 가졌던 것으로 안다"고 8일 전했다. 정지택 총재는 KBO 사무국을 통해 발표한 퇴임사에서 "지난해 KBO리그는 코로나19로 관중 입장이 제한을 받는 등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일부 선수의 일탈과 도쿄 올림픽에서의 저조한 실적으로 많은 야구팬의 실망과 공분을 초래했다"며 "이런 문제들은 표면에 나타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많은 야구팬이 '프로야구가 되살아나고 국민에게서 사랑을 되찾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철저한 반성과 이에 걸맞은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씀하신다. 여기에 전적으로 동감한다"고 전했다. 아울러 정지택 총재는 "프로야구 개혁을 주도할 총재도 새로운 인물이 맡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해 총재직에서 물러난다"고 밝혔다. KBO 규약 11조에 따르면 총재의 임기는 3년이다. 지난해 1월 5일 취임한 정지택 총재는 13개월 만에 물러나게 됐다. KBO 규약 14조는 총재가 사임, 해임 등의 사유로 궐위되거나 질병, 사고 등 부득이한 사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 1개월 이내에 보궐선거를 하도록 규정한다. 이는 신임 총재를 선출하는 절차와 같다. KBO 총재 선출은 10개 구단 대표이사로 구성된 이사회가 재적이사 4분의 3이상의 동의를 받아 추천, 총회가 선출하게 돼 있다. 총회는 각 팀의 구단주(또는 구단주대행) 모임이다. 여기서 4분의 3 이상 동의를 얻으면 총재로 선출된다. 전임 총재들처럼 정지택 총재도 이런 절차를 거쳐 선임됐다. 정지택 총재가 1년 만에 물러난 것에서 볼 수 있듯, KBO 총재의 리더십은 그리 강력하지 않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그 가운데 중요한 이유가 총재의 태생 자체가 '밀실 행정'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이다. 지난 2020년 10월 13일 이사회에서 임기 만료를 앞둔 정운찬 KBO 총재가 연임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이사회는 이 자리에서 정지택 총재를 추대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구단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다. KBO리그를 이끄는 총재를 회원사가 선출하는 것에는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각 구단은 리그의 이익을 추구하고, 구단 간 이해관계를 조정할 리더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 다만 정지택 총재 사임을 계기로 총재 선출 시스템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프로야구는 한국 스포츠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종목이다. 회원사는 10개이지만 다른 비즈니스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고객과 동업자(아마추어 야구, 광고주, 중계사, 미디어 등)가 있다. 그러나 KBO 총재는 사실상 '밀실'에서 만들어진다. 10개 구단, 그중에서도 일부 구단이 추천한 총재는 강한 리더십을 갖기 어렵다. 회원사 외 다른 구성원으로부터 검증을 받거나 지지를 받을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정지택 총재의 리더십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건 지난해 여름 '코로나19 술판 논란'이었다. 당시 리그 일정을 중단하는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정지택 총재가 특정 구단을 편드는 거 아니냐"는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진의와 상관없이 그는 "공정하지 않은 결정을 내렸다"는 의혹을 받았다. 정지택 총재는 두산 베어스 구단주 대행 출신이다. 또 일부 구단의 지지로 총재에 올랐다. 그러다 이해관계에 따라 다른 구단의 공격을 받았다. 태생적으로 총재는 자신을 만든 이사회라는 '밀실'에 갇히기 마련이다. 한 야구 관계자는 "낙하산으로 내려온 총재가 과연 얼마나 힘을 가질 수 있겠느냐. 이런 제도에서는 누가 총재가 되어도 리그를 이끌기 어려울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KBO리그가 팬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는 만큼, KBO 총재 리더십에 대한 기대도 크다. 밀실에서 정해지고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리더가 아니라, 팬들도 납득할 만한 전문가가 필요하다. KBO 총재는 시대정신에 따라 정치인이 맡을 수도, CEO형 경영인이 적합할 수도 있다고 본다. 중요한 건 능력뿐 아니라 절차적인 정당성 확보다. 그래야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 KBO 이사회로부터 독립된 위원회가 실무를 주도할 수도 있겠고, 공모를 통하는 방법도 있다. 어쨌든 밀실에서 나와 구성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아야 한다. 앞서 언급한 KBO리그 규약 14조에는 '보궐선거'라는 표현이 있다. 관행적으로 짬짜미하듯 총재를 뽑아 왔지만, 규약에는 분명히 선거라는 개념이 있다. 이에 따라 총재를 선출할 권리를 더 많은 구성원에게 줄 필요가 있다. 대한체육회 산하 각 경기 단체들도 선거를 통해 단체장을 뽑는다. 물론 사단법인의 특수성을 체육회와 똑같이 비교하긴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모가 몇 배나 큰 KBO의 리더는 더 엄정한 과정을 거쳐 세워지는 게 맞다. 밀실에 갇힌 리더가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사례를 야구팬들은 충분히 봐왔다. 스포츠콘텐트 팀장 2022.02.09 00:01
스포츠일반

[김식의 엔드게임]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 메이웨더

"신이 창조한 완벽한 한 가지는? 바로 내 전적이다."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44·미국)는 자신에게 이렇게 묻고 답했다. 그의 소셜미디어(SNS)에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사치품을 두른 일상이 올라온다. 허세와 허언으로 가득한 것 같지만, 메이웨더는 진짜다. 그는 슈퍼페더급부터 슈퍼웰터급까지 5체급을 석권하며 50전 50승(27KO)을 기록한 뒤 2017년 은퇴했다. 전적만큼 위대한 건 그의 수입이다. 2019년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최고 수입을 기록한 운동선수’ 1위가 메이웨더(9억 1500만 달러·1조원)였다. 은퇴한 지 4년이 지났어도 메이웨더는 링을 떠나지 않고 있다. 그는 7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복싱 시범경기에 나섰다. 상대는 2300만명 팔로워를 가진 유튜버 로건 폴(26·미국)이다. 폴(188㎝·86㎏)은 메이웨더(173㎝·66㎏)보다 더 크고 젊다. 그래도 프로 전적 1전(1패)뿐인 초짜다. "신이 내린 재능"이라는 메이웨더의 상대가 되지 못할 거 같았다. 경기 전 메이웨더는 "내가 원할 때 경기를 (KO로) 끝낸다'고 했다. 실제로 그는 2017년 종합격투기 UFC 스타 코너 맥그리거를 그렇게 '폭행'한 뒤 은퇴했다. 메이웨더와 폴의 복싱 경기는 체급차로 인해 정식경기로 승인 받지 못했다. 어차피 목적이 돈이기에,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다. 메이웨더는 패하더라도 신이 창조한 전적을 지킬 수 있었다. 폴에게도, 잃을 게 없는 경기였다. 이 대결에서 메이웨더는 폴을 KO 시키지 못했다. 경기 후반 메이웨더가 지친 폴을 압박했으나, 끝내 그를 쓰러뜨리지 못했다. 결국 8라운드까지 KO가 나오지 않자 이 경기는 규정에 따라 무승부로 기록됐다. 폴은 마치 챔피언이 된 것처럼 기뻐했다. 경기 후 메이웨더는 "폴은 나보다 훨씬 컸고 훌륭한 선수였다. 그가 생각보다 강해서 놀랐다"고 말했다. '복싱의 신'을 자처한 그답지 않게 초라해 보였다. 두 선수 다 링에서는 이기지 못했지만, 사업에서 이겼다. 메이웨더는 1억 달러(1100억원), 폴은 1400만 달러(150억원)를 대전료로 받는다. 각종 부가수입도 따를 것이다. 이 대결은 복싱이라기보다는 머니 게임이었다. 메이웨더는 2018년 말 일본 격투기 유망주 나스카와 텐신과 복싱 시범경기를 벌여 희롱하듯 KO승을 거둔 적이 있다. '머니 파이트'라면 뭐든 할 수 있음을 또 보여줬다. 아마추어 복서 시절부터 '기본기의 신'이라 불린 메이웨더는 비스듬히 서서 어깨로 상대의 펀치를 흘려보내는 '숄더 롤' 기술을 완성했다. 그보다 뛰어난 그의 테크닉은 흥행을 만드는 능력이다. 일부러 악역을 자처하고, 트래시 토크를 서슴지 않는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모았다. 그게 돈이 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돈을 잘 벌고, 또 잘 쓰는 메이웨더의 별명은 '머니'다. 빈민가에서 불우한 유년 시절을 보낸 그는 "내 아이들, 그들의 아이들은 나처럼 고난의 눈물을 흘리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난 지옥 같은 훈련을 견딘다"고 했다. 은퇴한 뒤에도 메이웨더는 '돈 되는 싸움'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늘 그의 계산대로 됐지만, 폴과의 경기는 그렇지 않았다. 메이웨더의 SNS에는 '복싱과 엔터테인먼트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문구가 있다. 과거의 완벽한 전적을 기반으로 그는 현재 최고의 돈벌이를 한다. 그의 미래도 지금과 별로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한, 새로운 쇼 비즈니스를 찾을 것이다. 유튜버와 대결한 그를 보고 새삼 궁금해졌다. 그는 왜 돈을 잘 벌까? 그에게 돈은 어떤 의미일까? 메이웨더는 이미 이 같은 답을 남긴 바 있다. "난 모든 돈을 합법적으로 벌었다." "날 좋아하는 이들은 내가 이기는 걸 보기 위해 돈을 낸다. 날 싫어하는 팬들도 내가 지는 걸 보기 위해 돈을 낸다." "돈이 최고는 아니지만, 그만한 게 없다." 김식 스포츠팀장 2021.06.08 05:50
야구

[김식의 엔드게임] 와인은 있고 와이(why)가 없는 윌리엄스의 투어

지난 2일 대전 한화전을 앞둔 맷 윌리엄스 KIA 감독(56)에게 물었다. “최근 KIA의 거의 모든 지표가 하락 중이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나?” 언제나처럼 윌리엄스 감독은 차분하고 친절하게 설명했다. “사실 어제(1일) 여러 가지를 볼 수 있었다. 한화는 1회 기회를 잡았고(4득점),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 그게 큰 차이다. 중요한 건 기회가 왔을 때 기회를 살리는 것이다. 또 수비력도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다. 수비에서 완벽에 가까워야 이길 방법이 있다.” 부족하지 않은 답변이었지만, 충분하지 않았다. ‘KIA가 왜 부진한지’에 대한 윌리엄스 감독의 냉정한 진단을 듣지 못해서다. 그는 세련된 레토릭을 썼지만, 감독의 말이 아닌 해설이나 평론 같았다. 취재진과의 대회에서만 이렇지도 않을 것이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외국인 감독과 소통은 쉽지 않다. 구단 직원들, 선수들과 소통도 마찬가지다. 때론 적당한 장벽이 오해를 막아주기도 한다. 편하게 농담하다가 설화에 휘말리지도 않는다. 말하는 훈련이 잘 되어 있고, 메이저리그(MLB) 경험이 곧 권위인 외국인 감독을 최근 KBO리그 구단들이 부쩍 선호하는 이유다. 취재진에게 설명하지 않더라도 감독은 목표와 비전을 가져야 한다. 팀 전체가 그걸 공유해야 한다. 그러나 윌리엄스 감독 2년째인 올해 KIA에는 그게 보이지 않는 것 같다. 3일 기준으로 8위(20승 27패)에 머문 성적도 그렇지만, 세부 지표에서 돋보이는 게 없다. KIA의 팀 홈런(16개)은 1위 NC(70개)의 22.8%에 불과한 꼴찌다. 파워가 없어 번트는 1위(20개)인데, 병살타는 3위(41개)다. 규정이닝을 채워 평균자책점 순위에 든 투수는 애런 브룩스(15위·3.52)뿐이다. 팀 평균자책점 9위(5.33)에 그치고 있다. 특히 불펜은 4월부터 과부하 논란이 생길 정도로 피로도가 높았다. 셋업맨 장현식은 투수 최다 출장(27경기 29이닝 평균자책점 5.28)을 기록 중이고, 마무리 정해영의 부담도 상당히 크다. 둘에 의존하는 KIA 불펜의 미래가 우려될 정도다. 윌리엄스 감독은 자신의 틀을 유지한 채 시즌을 치르고 있다. 선수가 없으면 없는 대로, 누가 부상이나 부진으로 빠지면 다른 선수로 대체한다. 트래킹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거나, 선수 운영에 변화를 주지 않는다. 그의 스몰볼 야구는 잘 통하지 않는다. 잘잘못을 떠나 이는 윌리엄스 감독의 스타일이다. MLB 시절부터 흐름에 맡기는 편이었다. 선수층이 두꺼운 팀, 감독이 육성자가 아닌 관리자 역할을 하는 팀에 적합한 리더였다. MLB 만년 하위팀이었던 피츠버그가 2013년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스토리를 담은 책 『빅데이터 베이스볼』은 급변하는 야구 트렌드를 담았다. 올드스쿨에 해당하는 클린트 허들(64) 감독이 고정관념을 깨고 데이터 기반의 새 야구를 받아들이는 얘기다. 그 시작이 수비 시프트의 활용인데, 피츠버그의 성공으로 2014년 MLB의 시프트가 급격히 늘었다. 이 이야기에 당시 워싱턴을 이끌었던 윌리엄스 감독이 잠시 등장한다. 이 책은 “윌리엄스는 2014년 시프트 빈도를 높이겠다고 선언했다. 심지어 야수 배치를 전담하는 마크 위더마이어 코치를 영입해서 데이터에 따라 야수를 배치하도록 했다. 하지만 2014년 워싱턴의 시프트 빈도는 (30개 구단 중) 29위에 그쳤다. 선수들이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길 거부한 것이다.” 윌리엄스 감독 스타일은 변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전혀 모르는 팀에 와서 새로운 전력과 전략을 만들 거라고 기대하는 건 합리적이지 않다. 2017년 통합 우승에 성공했던 KIA가 2년 뒤 윌리엄스에게 지휘봉을 맡긴 건 '윈 나우(win now)'를 목표한 것이라고 봤다. 그의 취임 일성도 "리빌딩을 하지 않는다. 매일 이기는 야구를 할 것"이었다. KIA는 지난해 6위에 그쳤다. 올해는 8위다. 안치홍(롯데)과 양현종(MLB 텍사스)이 이적하는 동안 KIA 구단은 이렇다 할 투자를 하지 않았다. 조계현 단장은 올해 들어 리빌딩 얘기를 부쩍 많이 한다. 이런 엇박자 속에 성적이 떨어지자 KIA는 윌리엄스 감독과 함께 영입한 위더마이어 수석코치를 잔류군으로 보냈다. 사실상 유일한 소통 파트너인 위더마이어 코치를 잃은 윌리엄스 감독은 조계현 단장과 김종국 수석코치, 이범호 2군 총괄코치에 둘러싸여 있다. KIA 구단은 "위더마이어 코치를 보낸 건 윌리엄스 감독의 뜻"이라고 밝혔다. 윌리엄스 감독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고립된 것 같다. 윌리엄스는 지난해 '와인 투어'로 화제를 모았다. 상대 팀 감독과 만나 인사하는 KBO리그의 관례에 특별한 선물을 더해 자신만의 세리머니로 특화한 것이다. 신사적인 윌리엄스 감독은 올해도 새 감독들과 만나 선물을 교환하고 있다. 훈훈한 장면이다. 그러나 그는 팀이 부진한 이유에 대해서는 추상적으로 말할 뿐이다. 진단(why)이 이러니 대책(how to)도 명쾌할 리 없다. 이렇게 KIA의 시간이 가고 있다. 김식 스포츠팀장 2021.06.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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